노아와 홍수에 관한 성서의 이야기가 지나간 시대의 전설이라고 생각했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 그 이야기는여기 지금의 우리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할리우드조차 이것을 증명한다. 지금껏 제작된 코미디 영화 가운데 가장 비싼 알마이티라는 영화를 왜 제작했겠는가?
모든 성서의 우화와 마찬가지로, 노아와 홍수 이야기는 우리들의 영적 발전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단계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이 이야기에서 “홍수”는 임박한 우리 이기심의 증가를 나타내며, 이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영적 단계는 “노아”가 의미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노아(혹은 우리들 가운데 어떤 사람)는 “방주”- 그의 내면의 베품이라는 영적 본질-를 만들어야함을 깨닫는다.
그런후, 그를 삼키려 위협하는 이기적 욕구들의 홍수로부터 도피하기 위하여 그는 방주 안에서(그 내면의 베품의 본질 안에서) 머무르는 것이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기적인 욕구들은 더이상 어떤 이를 지배할 수없다. 그 사람은 그의 예전의 이기적 본성을 완전히 뛰어 넘어 올라가서,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베품의영적 영역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들 모두 그리고 전 세계가 내적이고 외적인 홍수에 휩쓸려가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 상태야 말로 그 이야기 속에서 홍수가 생기기 이전의 노아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과 일치한다.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의 이기적인 본성에 의해 위협받고 있으며, 우리는 이 이기적 본성을 어떤 외적인수단을 이용하여 물리칠 수 없다. 홍수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방주를 지어서 그 안에 숨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스스로들의 이기심을 넘어 올라설 방법을 배우고 베품이라는 영적 본질을 습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그럴 때 모든 다른 종이 노아의 방주 안에서 서로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았듯이, 그 홍수는 가라앉고 모든 것이조화를 이룰 것이다. 우리가 이기심이라는 홍수에서 재현할 때, 인류는 새롭고 영적인 삶으로의 완전한 변천을이룰 것이다.
신성한 음모
만약 우리 인간들처럼 자연이 자기 이익을 지향하여 움직인다면 우리 몸은 즉시 붕괴되고 말 것이다. 자연은 그 대신 본래부터 이타적이고, 이것이 생명을 존재하도록 한다. 그러나 만약 자연이 이익을 위해서이타적이라면, 왜 우리 인간은 그렇지 않은가?
경제 붕괴는 불가피하다. 이익 지향주의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은 항상 이득을 얻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항상 잃을 것이다. 그리고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더 큰 힘을 지니므로 그들에게 더 얻는 일은 쉽다. 타인들을 희생하여더 많은 돈과 힘을 얻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지구상의 모든 사회에서 존재하며, 그렇기에 부와 권력의 대부분이 항상 작은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기형은 부패한 사람들, 부패한 제도, 혹은 부패한 사회적 구조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추정하는것이 온당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제도든, 어떤 사회적 구조든,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누구가 되었건, 그모든 것들이 작고, 부유하고, 권력있는 소수가 다수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그 똑같은 기본 양식을 영속시킨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는다.
비영리 사회의 도전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낳는다: “ 이익을 위한 욕구에 바탕을 두지 않는 정의롭고 지속적인 사회적 구조를창조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그럴 수 없다.” 이다. 이익을 위한 욕구는 인간 본성에서 고유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 뒤에 놓여있는 동기가 바로 그 욕구이다.
진실은, 이익을 위한 욕구란 이런 식으로 묻는 것과 같다. “ 거기에 나를 위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어떤 이득없이는 지속할 수 있는 사회 구조의 창조는 커녕 우리가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얻으려는 욕구, 특히 우월함에 대한 욕구는 우리의 너무나 고유한 본성인지라, 그것은 마치 신성한 음모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들은 마치 붙박이 구조와 같은 방식으로 고안되어서 우리 자체의 본성을 패배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바알 하 술람 및 다른 현대 카발리스트들의 저서를 검토해보면 그들 모두가 이 수수께끼를 인정했으며, 인간 본성의 이같은 고유한 결함을 수 세기간 지적해왔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알 하 술람은 우리가 행위를 위한 기존과 다른 동기를 발견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전체 혼란이라는 결말을 맞을 것이라고 진언하였다. 정치적 혼란은 파시즘 체제를 만들어 낼 것이고, 그 결과 나타나는 국가간의 충돌은 제 3차는 물론 제 4차세계 핵 전쟁으로까지 이를 수 있다.
그들 저서가 저술되었던 60년 쯤전에는 이 같은 예측들이 억지스럽게 보였으나, 오늘날 우리가 거부하기엔 그예측들은 너무도 사실적으로 보인다.
부의 공유
카발라에 따르면 위기는 화폐 제도의 붕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위기는 단순히 우리 고유의 자기 중심적 본성의 징후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위기를 포함하여 모든 위기들에 대한 해결책은 우리의 본성을 이익 지향적에서 나눔 지향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 이익 지향주의에서 집단 이익 지향주의로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 협력하는 사회를 창조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집단 자체가 그 안의 모든 개인의 복지를 보장할 것이다.
그러한 사회 속에서는 사람들이 오직 나누고 베풀기만을 바랄 것이다. 자연히 거대한 양의 자원과 인력이 사회적으로 혜택을 주는 기획에 참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몇 년내에 세상은 너무도 심오하게 달라져서한 때 우리가 얼마나 눈이 멀었었는지를 놀라워하며 불신 속에서 타인들을 이용하던 이전의 나날들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인간: 우주의 유일 무이한 존재
고유하게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관련되어 있지 않고, 우리 현재의 이기적 처리 방식에 종속되어 있지 않은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카발라의 지혜가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곳이다. 이미 존재하는 자연 속의 완전한 구조들을 개인과 인간 사회에 크게 적용시키는 방법을 보여주는 과학이 바로 카발라이다.
자연 전체에서 인간들은 유일하게 자기 중심적인 존재이다. 원자들, 분자들, 세포들, 그리고 조직들은 모두 그들보다 더 큰 시스템 속에서 협력한다. 식물들도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을 제외한 자연 속의 모든 것은전체 자연 체계에서 그 자신의 자리에 완벽하게 끼워맞추어져 있다.
당신이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시초부터 전체 자연 체계에 대조적으로 창조되었는가?”그에 대한 답은, “ 어떤 체계 속에 존재하면서 그 체계에 대해 배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우리 삶의 목적은 타인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을 이해하는데 있으며, 우리 스스로를 돌보듯 타인들을 돌봄으로써 포괄적인 자연 속에 의식적으로 결합되는 것에 삶의 목적이 존재한다. 카발라의 지혜는 통합의 지혜이다. 카발라의 기술들은 점진적으로 이 우주에서 우리의 자리를 알게끔 해준다. 카발라는 통합을 향하여 우리를 한 단계 한 단계 안내한다.
경제 위기에 대한 명상
우리를 이 지경으로 빠뜨린 월 스트리트의 “돈주머니들”에게 화를 내는 것은 쉽다. 그러나 열이 식고, 정신이 뚜렷해지면 여기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디인지 생각할 때이다.
경제 위기를 다루는 뉴스를 내가 너무 많이 봐왔다는 것을 고백해야만 하겠다. 점점 더 화가 나고 절망적이어서 동정심조차 더 이상 느껴지지 않기 시작할 때, 가까운 친구와 가족들, 그리고 어쩌나, 나에게도 경제 위기의위협이 시작된다. 그러나 가장 절망적인 사실은 상처를 받는 우리 대부분은 법대로 사는 선한 시민들이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야기시킨 탐욕스런 자들의 실수의 댓가를 왜 우리가 치루어야만 하는가? 이에 대한 책임이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어서,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압수하여, 희생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일단 이 같은 생각에서 오는 달콤한 복수의 맛이 사그라들기 시작하면, 다른 어떤 느낌이 그 자리를차지한다-걱정! 결국, 과거에 항상 경제가 위기로 부터 되살아났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누가 단정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위기가 또 한번의 규칙적인 경제 순환의 흐름에서 오는 것이 아니면 어쩔 것인가? 이번에는 전혀 다른 유형의 해결책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에는 경제 재앙이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해 왔다: 이번에는 경제 재앙이 정말로 전세계적이다. 그러나 이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부분적인 해결책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오늘날의 위대한 경제 학자들은 세계 경제의 상호 연관성을 완전히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들은 간이 죽으면, 몸도 죽는다는, 부분이 전체를 넘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완전히 허를 찔린 이유였다. 그러나 이제야 그들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국가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경제만 구하려고 애쓰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그렇게도 상호 의존하고 있다면,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복지를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허나, 왜 아무도 이 같은 명확한 사실을 외치지 않고 있는가?
카발라에 따르면 우리가 이 같은 접근을 회피하려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이기적 본성에 있다. 자기 중심적 존재들로서 자연히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려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해결책은 단순히 용납할 수 없다.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묵은 세계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이것이며, 문제는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바로 그들이 이번 위기는 “단순한 또 한번의 위기” 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사실은 이번 위기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 속의 세포들과똑같이 인간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전 체계의 이익을 돌보기 시작해야 하는 새로운 글로벌 시대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이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마치 몸 속의 암 세포처럼 전체체계에 해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런 사람(혹은 세포)은 우리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세계 시장 붕괴는 오직 이것의 한 예에 불과하지만 이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현재의 이기적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카발라의 지혜가 우리를 도울 수 있다.
베푸는 법 배우기
카발리스트들은 자연 속에는 어떠한 전체 시스템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법칙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이 법칙에 따르면, 전체 시스템의 복지를 위해 작용하기 위해서 그 시스템의 각 부분은 오직 자신이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가져갈 뿐이다. 세계는 지금 전체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법칙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자연 속에서 이 법칙이 다른 어떤 시스템을 위해서 그렇게 하듯이 이 법칙은 우리의 안정과 복지를 보장할것이다.
그래서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최우선적 일은 우리의 세계관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가 상호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를 배워야만 한다. 그것도 단순히 사회적 경제적 체계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 욕구, 그리고 의도의 수준에서 우리는 진실로 그러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전 세계는 각 구성원들이 스스로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돌봐주는 하나의 가족임을 우리는 알게 될것이다. 일단 우리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자연의 법칙들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경제 위기와 같은 위기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위기들도 즉시 자취를 감출 것이다.
우린 구두쇠에서 벗어날 수 없나요?
욕심쟁이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는 어떻게 나이, 빈부차, 국적을 막론하고 그의 명성을 100년도 넘도록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반영된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마도 그의 이야기가 개인적인 변화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불러오기 때문일까?
문학에서 가장 질기게 살아남아온 캐릭터들 가운데 하나는 촬스 딕킨즈의 고전 이야기 속의 인색하고, 탐욕적이며, 냉정한 자본가로 부의 축척에 그의 전 일생을 바친 스크루지 영감이다. 우리 모두가 스크루지 영감을 혐오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무도 인정하기 좋아하지 않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깊숙한 우리 내면에 스크루지 영감에 대한 묘사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들 모두는 우리가 가는 길목에 좋은 것들이 가득하기를원한다.
우리들 모두가 스크루지 영감처럼 돈에 집착하지 않을지는 모르나 우리를 유혹할 수 있는 다른 기쁨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존경, 명성, 지식, 권력, 혹은 “선한” 사람이 됨으로써 얻는 따뜻한 느낌까지 말이다. 스크루지 영감처럼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가면서 이같은 보상을 얻는다는 것이다. 위대한 카발리스트 바알 하술람은 “세계의 평화”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모든 사람의 본성은 이 세상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을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는 것이다.”
하여, 스크루지 영감이 자기 이익 추구의 달인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흥미를 끄는 동시에 우리의 혐오를 산다.
우리 내면의 스크루지 영감을 직면할 때가 왔다!
지금까지는 우리 모두들의 내면에 스크루지 영감이 들어앉아 있는 사실에 대해 눈을 감고 넘어가는 것이 쉬웠다. 결과적으로 보면 수 천년간 이런 식으로 꽤 잘 해온 셈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경제 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실제 본성과 정면 대결을 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이제 우리가 변화를 해나가야 할 때임을 알리는 경고의종소리를 울린다.
말리가 떠난 후에 세명의 유령이 스크루지 영감을 찾아와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예상되는 미래를 보여준다.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스크루지 영감은 그라는 사람의 실체와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직시하게끔 강요당한다. 그는 자신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보면서 전 일생의 부의 축척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는 사랑과 자비라는 불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유령은 스크루지 영감의 주의를 그 자신에서 돌려서 나머지 인류를 고려하도록 강요한다. 그 유령은 두 아이-남아와 여아-를 보여주는데 이 아이들은 스크루지 영감이 “즐겨온” 초과의 부산물인 무심과 탐욕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스크루지 영감은 이 무심과 탐욕에서 진정한 기쁨을 얻지는 못하였음은 분명하였다. 왜 그럴까?
카발라는 우리 필요 이상으로 얻는 모든 것은 우리 내면을 더 큰 공허함으로 바꾸어버릴 뿐만 아니라, 우리가절대로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의 만족을 향한 우리의 욕구를 확대시킨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필요하고 과도한 만족의 추구에 더 열망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을 위해 가지면 가질 수록 타인을 위해남겨지는 것은 적다. 이것이 바로 그 두 아이를 불행하도록 만든 문제의 근원이다.
오늘날 우리들 또한 현재의 유령의 방문을 받고 있다. 그 유령은 우리들의 본성의 결과를 직면하도록 우리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 유령의 이름은 “ 세계 경제 위기”이다.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 방문의 막바지에 이르르면 스크루지 영감은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는 가슴으로 절규한다. “ 영혼이여! 들어 주소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오. 지금껏 그래온 것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오. 내가 모든희망을 비켜갔다면 왜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오?”
우리들 또한 우리 본성을 변화시킬 수 밖에 없다. 카발라에 따르면 우리는 오직 “상위의 힘”의 도움으로 우리의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우리는 “완전한 기도”를 올려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껏 그래온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더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내적인 깨달음에 이르러야하며,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을 더이상 참고 견디기를 거부해야함을 의미한다. 그 때서야 우리는 “상위의 힘”의미덕에 의해 즉각해서 변화될 것이다. 즉, 우리 내면의 진실한 요청이 있을 때에만 더 발달되고 이타적인 상태인 우리의 미래가 우리 내면에서 드러날 것이다.
스크루지 영감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그는 타인에 대한 사려와 동정으로 가득한 새 사람이 되어 깨어난다. 딕킨스는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스크루지는 그의 약속을 지키고도 남았다. 그는 모든 것을 실행하였고, 그보다 더 많이 했다…그는 좋은 친구,좋은 주인, 좋은 사람이 되었다.”
카발라는 안전하고, 번창하며,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보다 타인들을 더 사랑하는 영적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타인들의 복지를 우리 자신들의 복지보다 더 염려한다는 것을 뜻한다. 바알 하술람은 그의 글에서 이렇게 저술한다:
“모든 사람들은 개인의 이득이 사회의 이득과 동일한 하나의 것임을 이해하는데서 변화와 교정이 일어야 한다.세상이 완전한 교정을 이루는 길은 이것이다.
변화를 거치지 않은 지금에서는 타인들을 만족시킬 수록 우리가 더 충족된다는 것이 모순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될 것이다.
세계 위기의 시기에 어린 왕자의 단순한 지혜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아주 많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경제 위기로 몰아넣은 이유들을 찾아내려 노력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매우긴 논문을 쓰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깨닫고 있듯이 세글자로 그 이유를 요약할 수 있다: 이-기-심. 모든 우리의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경제 위기는 우리의 자기 중심적인 행동, 생각, 그리고욕구의 결과물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탐욕이 무책임한 축척이라는 사재기 개념을 탄생시켰고, 그들이 쌓아오던 “재산 덩어리”가 끝내 무너져버린 것이다.
어린 왕자와 한 비지니스 맨의 대화를 살펴보면 더 잘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오억개의 별들을 가지고 무엇을 해요?”
“아무것도 안해. 난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지.” “그리고 그 별들을 소유하면 당신에게 어떤 좋은 점이 있나요?”
“나를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혜택을 주지.”“그리고 부유하다는 것은 어떤 좋은 점이 있나요?”
“나로 하여금 더 많은 별들을 살 수 있게 하지, 만약 어떤 별이 발견이 된다면.”“한 사람이 별들을 소유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나는 그것들을 관리해.” 비지니스 맨이 대답했다. “그것들을 세고, 또 세고…”
어린 왕자는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 만약 내가 비단 스카프를 소유한다면, 나는 그것을 목에 걸칠 수 있고지니고 다닐 수도 있어요. 만약 내가 꽃을 소유한다면, 그 꽃을 뽑아서 가지고 갈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당신은별들을 하늘에서 딸 수도 없잖아요…”
“그렇게 못하지. 그래도 그 별들을 은행에 넣을 수는 있어.”“은행에 넣는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그건 내 별들의 수를 작은 종이에 적는다는 것을 뜻하지. 그리고는 그 종이를 서랍에 넣고 그 서랍을 열쇠로 잠그는거야.”
“확실히 어른들은 모두들 이상해.” 그의 여행을 계속하면서 어린 왕자는 혼자 중얼거렸다.
최근월스트리트의 흔들림으로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빠져있다. 이 경제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미국과 세계 경제를 둘러싼 대사건들로 볼 때 이번에는 정말이지 심각하기 그지없다. 세계 경제가 깊은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지금같은 때 백만 불짜리 질문은 “어떻게 하면 우리는 정말이지 생존이 가능하고 안정적인 세계 경제 체제를 확립할 것인가?” 이다.
훌륭한 경제학자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낼 수 있다고 카발라의 지혜는 말한다. 다만 자연의 계획은 그 모든 부분들이 완전한 조화 속에서 움직이는 상태로 이끄는 것임을 우리가 이해해야 할 뿐이며, 인간 사회에서 이는 각 개인의 일이 전체 사회를 이롭게 해야 함을 뜻한다.
그런 행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생명체이다. 생명체의 모든 세포들은 몸을 하나의 전체로서 이롭게 하기 위해 상호연결하고 작용한다. 카발리스트 예후다 아쉴락은 “미래 사회 건설”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저술한다.
“…자연에 의해 각 구성원은 자신의 필요를 사회로부터 받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사회 체제와 마찬가지로 경제 체제에서도 상호의존이 게임명이다. 문제는 모든 경제적, 사회적 체제를 작동시키는 인간 행동의 기본은 이기심이고, 그것은 항상 공공의 이익보다는 투자자들과 주주들의 편협한 사적인 이익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이다. 부와 명예의 추구, 남 위에서 지배하는 것이 회사를 가진 사람들이 최우선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부분들을 단결과 상호작용으로 이끄려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은 명백하고, 그러므로 현재 우리의 경제 체제의 생존 양식은 자연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사실상 인간 사회에서 우리가 만들어온 제도들은 자연의 체계에 완벽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경제 체제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자연의 모델을 따라야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 몇가지 일차적인 단계들이 실행될 필요가 있다.
- 모든 현존하는 미디어 채널들을 사용하여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상호연결 되어있는 다세포를 가진 하나의 몸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이 보편적인 시스템 속에서 각각의 모든 세포(사람)들은 개인에게 가장 이로운 경제 모델은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모델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 대중은 위기의 실제 원인들을 알아야 한다. 자연은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우리가 이 계획에 반하여 행동한 결과임을 사람들은 이해해야만 한다.
- 의사 결정자들은 자연의 총체적 시스템이 작용하는 법은 물론이고, 이것이 경제 체제를 포함한 인간 체제들 내에서 필수적인 변화를 위해 어떠한 암시를 전하는지를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지식을 바탕으로 그들은 우리 사회 체제들이 자연의 계획과 균형을 이루도록 그에 해당하는 변화를 이행해야 한다.
오직 우리가 이 방향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현재 진흙 구덩이에 빠져있는 세상을 구해내어 안전한 평지로 인도하는데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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